연구실의 KC와 그의 사유가 세세함이 연구에 유리한지와 관련해 이야기했다.
그가 연구실 다른 인원의 코멘트 방식을 배우고 싶어 메모하고, 내용별로 카테고리화 했다는 점은 과학자같았다. 노하우와 같이 정성적으로 보이는 것을 배우기 위해 정량적인 접근을 시도한 점이 인상깊었다.
KC 사유의 세세함을 곱씹어 보고 나와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보기 위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는 책에 대해 KC가 쓴 글과 (KC의 해당글) 내가 쓴 글을 비교해보았다. 같은 책에 대한 글이라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책을 읽고 쓴 글이었다. (같은 저자고, 비슷한 시기에 두 글을 읽었다. 해당글)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작성의 목적 등 많은 것이 다르기는 하나, 그런 특성조차 성격이 묻어나는 것이라 생각되어 그냥 비교한다.
나의 글은 짧다. 한국어 기준 5문장이 전부다. 각 문장을 s1부터 s5로 지칭하면, s1은 사실기술 (책 읽음), s2도 사실기술 (소설 오랜만), s3도 사실기술 (옛날에 사서 이제 읽음), s4는 자아성찰 (구조화되지 않은 감정 관찰에 서투름), s5도 자아성찰 (구성요소 비교에 초점) 을 다룬다. 책에 대한 내용이 없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보도 얻을 수 없다. (소설책이라는 것 정도.) 나는 이 책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s1, s2, s3도 사실기술이라지만 나에 관한 내용이고, s4, s5는 직접적으로 나의 특성을 다룬다. 책을 매개로 나를 관찰한다.
KC의 글은 길다. 인용을 빼면 7문단이다. 각 문단을 p1부터 p7로 지칭하자면, p1은 주요 소재인 빛의 경로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인과성과 합목적성을 대표하는 뉴턴역학과 해석역학—을 이야기한다. p2는 자유의지와 두 관점을 연관시킨다. p3는 해석역학의 관점을 체현하는, 헵타포드를 설명한다. p4는 소설의 내용을 삶으로 확장한다. p5는 주인공의 어투 등 글의 서술 방식과 그에 대한 감상을 다룬다. p6는 헵타포드와 같은 사유를 인간이 할 수 있는지, p7은 헵타포드식의 사유방식에서 교훈을 도출한다. 인용문구는 총 7문단으로 각각을 c1부터 c7로 지칭하면, 다음과 같이 내용과 대응된다: p1-c1; p2-c2; p3,p4-c3,c4; p5-c5; p6,p7-c6,c7. 모든 내용에 대해 인용을 통해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다.
두 글의 큰 차이는 객관의 존재여부이다. 각 글을 A1, A2라 하면, 나의 글, A1에는 객관이 거의 없다. 모든 오브제는 나와의 관계, 나에 관한 일화, 나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하고, 그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내부에 어떤 내용이 있고, 그 자체로 어떤 특성을 갖는지 기술되지 않는다. A2는 글의 중심이 책에 있다. 객관을 분명히 인지하고 객체의 내용과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그로부터 감상을 이끌어낸다. 근거를 바탕으로 작성하기에 디테일을 다루기도 유리하고, 더 복잡한 감상을 직접적으로 기술한다.
나도 항상 A1과 같이 글을 썼던 건 아니지만, 큰 경향성은 그랬던 것 같다.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음에도, 여전히 '나'는 내 주요한 관심사이고, 대상을 그 자체로 연구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어떻게 이동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관점을 지니게 되었으니 하나씩 실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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